펄벅의 대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몇 번 시도했었지만
그때마다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드디어 읽었습니다.
이번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연휴 동안 날씨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좋았다는 것은, 저에게 좋았다는, 그리고 책 읽기에 좋았다는 뜻이어요.
저는 맑은 날도 좋아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씨도 좋아합니다.
비 내리는 날에 비를 보면서
멍을 때리거나 책을 보거나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 여행을 갔었는데
운이 좋게도 저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적당했습니다.
배도 고프지 않고, 샤워도 했구요.
비가 잘 보이는 창과 기댈 곳이 있었고
주변은 적당히 시끄러웠고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게임기 있는 펜션으로 예약한 나 자신 칭찬한다 ! )
책장이 잘 넘어갔습니다.
읽다가 잠이 오면 쪽잠을 자다가 깨면 또 읽었습니다.
비오는 날 읽기엔 소설이 좋아요.
책에 대하여
펄벅의 대지는 펄벅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펄벅은 여성으로서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습니다.
미국인이 쓴 중국 농부의 일대기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몇 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한 뒤에 겨우 출간되었는데
의외로 영미권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고 합니다.
대지는 '왕룽'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책입니다.
왕룽은 가난한 농부입니다. 우직한 성격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몇 번의 행운을 통해 끝내 부자가 되고 자손도 많이 거느립니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밀착해서 보여줍니다.
중국 근대역사의 흐름에 접한 개인과
그 개인의 인간성에 대한 심도있는 묘사가 이 책의 매력입니다.
청나라 말기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작중 사회상이 지금 느끼기엔 낯설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미시 역사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꽤 흥미롭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글을 읽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보고 무서운 외국인이라고 느끼며 신발 밑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이
우리 역사 속 선조들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굶주림이 두려워 갓 낳은 딸을 죽이고, 마지막 남은 진주 두 알을 남편 첩에게 빼앗기는 왕룽의 아내 오란과
아들 낳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난을 벗어나자 첩을 들이며, 예쁘게 보이지 않던 아내가 세상을 뜨자 허무함과 후회를 느끼는 왕룽의 모습은
무섭도록 사실적입니다.
펄벅이란 작가가 인간 행동 관찰과 본성에 대한 통찰에 기울인 노력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누구에게 추천할까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는 책은 아닙니다.
내 마음에 남는 교훈이 큰 책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안나 카레리나, 달과 6펜스 그리고 테레즈 라캉 등
개인의 삶을 파헤치 듯 서술하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도 잘 읽힐 것입니다.
사실, 이 책보다도 이 책을 읽었던 순간들이 저에겐 참 좋아서
시간이 더 흐른 뒤 다시 이 책을 꺼냈을 때도
흔쾌히 즐겁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